▲ 25일 전남 목포시 산정동 어업지도선 전용부두에서 농림수산식품부 산하 서해 어업관리단이 출항 준비로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우린 삼단봉·가스총뿐
도끼에 맞아 다치기도
“모두 사명감으로 버텨”


[천지일보 광주=이지수 기자] 오전 10시 목포 남항부두. ‘부우웅~’ 출항을 알리는 경적 소리가 울리자 농림수산식품부 산하 서해어업관리단 어업단속원들의 손길이 더욱 분주해졌다.

“앞으로 좀 더 이동!” 누군가 우렁찬 목소리로 신호를 보내자 배를 서로 연결한 줄이 풀어지고 지도선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25일 출항하는 배는 모두 두 척. 무궁화 4호와 27호가 거친 물살을 가르며 바다로 전진한다.

불법조업 어선을 단속하기 위해서다. 이제 이들은 8일간 육지와 격리된 채 망망대해에서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게 된다. 그래서인지 단속원들의 표정에는 비장함마저 감돌았다.

무궁화 27호를 진두지휘하는 추경조(53, 서해어업관리단) 선장은 “위험한 순간이 많이 있기 때문에 직원들의 안전을 제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며 “국민과 우리 어족자원 보호를 위해 일선에서 뛴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일터인 배타적 경제수역(EEZ)에서는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아 가족과의 연락도 쉽지 않다. 대신 지갑이나 휴대전화 속 사진으로 그리움을 달랜다고.

3교대로 업무가 돌아가지만 날을 새기도 하고 자더라도 3시간 안팎이다. 기본 업무뿐만 아니라 돌발 상황도 많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육체적?정신적 극한의 고통을 이겨내며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불법조업 중국 선원들의 저항은 갈수록 흉포화하고 있다. 단속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죽기 살기’로 덤벼든다. 도끼, 삼지창, 쇠톱, 쇠파이프, 낫 등을 휘두르고 심지어는 우리측 단속원들을 향해 주먹만한 납덩이들을 던지며 저항한다. 그러다 보니 단속과정에서 다치거나 생명을 잃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정이영(45, 서해어업관리단) 항해부장은 “도주하는 중국어선 난간에 가슴을 부딪쳐 목숨을 잃을 뻔한 적이 있다”며 “지금 생각해도 정말 아찔하다”고 토로했다.

정 부장은 파도가 심한 상황에서 중국어선이 도주하기 위해 갑자기 방향을 트는 바람에 난간에 가슴을 심하게 부딪쳤다. 만일 그대로 바다에 빠지게 되면 추진기로 빨려 들어갈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정 부장은 이 사고로 두 달간 가슴 통증 때문에 고생했다고 털어놨다. 이렇듯 EEZ 단속현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실제로 지난 2006년부터 2010년까지 5년 동안 동?서해어업관리단 어업감독공무원 483명 중 55명이 죽거나 다쳤다. 이 가운데 숨진 공무원은 2명,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공무원이 53명이다.

올해 4월에는 불법조업을 하던 중국 선원이 서해어업관리단 단속원의 머리를 도끼로 내리쳐 크게 다친 적도 있었다. 이 사건으로 단속원 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장비·인력부족… 조리사까지 단속에 투입
단속원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장비와 인력부족이다. 이들에게 주어진 무기는 가스총, 전기 충격기, 삼단봉이 전부지만 이마저도 부족하다. 단속 시에는 주로 삼단봉을 사용한다.

그러나 도끼나 낫 등을 휘두르며 극렬히 저항하는 중국 선원들을 삼단봉 하나로 제압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어업관리단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게다가 인력이 부족해 심지어 조리사까지 단속에 투입된다. 불법조업 중국 어선은 한 척당 10~20명이 타는데 우리측 단속정에는 7명이 전부다. 의료진 역시 부족하다. 1500톤급 지도선의 경우 17명 정도가 타는데 의료진은 1명뿐이다. 작은 지도선은 의료진 없이 구급약에 의존하고 있다.

특히 10월부터는 ‘쌍끌이’라고 불리는 중국의 쌍타망(어선 두 척이 한 조를 이뤄 그물을 끌어냄) 조업이 기승을 부려 더욱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지난 16일 불법조업을 하다 해경이 쏜 고무탄을 맞고 숨진 중국인 장모(44) 씨가 타고 있던 어선도 100톤급 쌍타망조업선이었다.

김시관(54, 서해어업관리단) 선장은 “불법 중국 어선들이 이제는 30~40척씩 조직화해 현재 인력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인원과 지도선 등을 더욱 보강한 합동 단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민주통합당 박민수 의원이 농림수산식품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불법어업을 단속하는 국가 어업지도선의 단속 장비와 보호 장구가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 의원은 “불법어업 단속 실적에 비하면 정원대비 현원도 턱없이 부족한 것도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현재 어업지도선 수는 동해어업관리단 소속 19척과 서해어업관리단 소속 15척으로 총 34척이다. 승선 인원은 모두 383명이다. 이는 총 정원 591명의 65% 수준에 불과하다. 단속 건수와 단속 시 위험수준을 고려할 때 증원이 시급한 상황이다.

박 의원은 “단속 장비나 보호 장구는 불법어업 단속 시 단속 선원의 생명보호와 신체의 안전에 직결되기 때문에 충분한 예산을 확보해 장비나 장구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림식품부에 따르면 2001년 6월 한?중 어업협정이 발효된 후 지난 22일까지 불법어업으로 우리 당국에 나포된 중국 선박 수는 4638척이다.

나포 선박 수는 2005년 584척으로 정점을 찍은 후 감소세를 보이다가 2010년부터 다시 급증하는 추세다. 아울러 2010년 370건이던 불법어업 선박 수는 지난해 537건으로 크게 늘었다. 올해 10월 22일까지 343척에 달한다.

이에 대해 노호래 한국해양경찰학회장(군산대 해양과학대학 해양경찰학과 교수)은 “우리 정부가 중국 당국에게 어민에 대한 지도나 단속을 더욱 강화해줄 것을 강력하게 요청할 필요가 있다”며 “인명사고가 계속 일어나기 때문에 서남해안 불법조업 단속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